일본인은 왜 수염을 기르지 않을까? 역사와 직장 규칙

일본인은 왜 수염을 기르지 않을까? 역사와 직장 규칙

사무라이의 상징에서 금지령과 회사 규칙까지, 일본 수염 문화가 바뀐 과정을 따라갑니다.

일본 거리에서 수염을 기른 남성을 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털이 적거나 위생을 중시해서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일본에서 수염이 드문 이유는 유전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역사, 직장 규칙, 미의 기준이 함께 만든 결과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에서 수염을 부르는 말부터 사무라이 시대의 금지령, 메이지 이후의 변화, 아이누 문화, 오늘날의 회사 규칙과 법정 다툼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6

일본에서 수염을 부르는 말, 히게

일본에서는 얼굴에 나는 털을 통틀어 히게[髭]라고 부릅니다. 위치를 붙이면 더 구체적입니다. 윗입술 위의 콧수염은 구치히게, 턱수염은 아고히게, 볼에 난 수염은 호히게라고 합니다. 일상에서는 이런 구분을 매번 쓰지 않고 히게 한 단어로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염을 뜻하는 히게는 卑下[히게]와 발음이 같습니다. 卑下는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 발음의 일치는 수염의 어감을 설명하는 언어 유희로 자주 인용됩니다. 일본어의 동음이의어가 문화적 인상을 얼마나 쉽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무라이의 수염에서 금지령까지

중세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사무라이는 수염을 기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수염이 없는 사무라이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투에서 수염은 위엄을 보여주는 요소로 여겨졌고, 수염이 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짜 수염을 붙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때 수염은 전투 능력과 권위를 보여주는 표식이었습니다.

에도 막부가 안정기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전국 시대의 거친 기풍이 막부에 대한 반항으로 비춰졌고, 다이묘에게는 수염을 깎으라는 권고가 내려졌습니다.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 때에는 큰 수염을 금하는 오히게 긴시레이[大髭禁止令]가 시행되었습니다. 1670년의 이 금지령은 1686년에 다시 강화되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수염을 밀고, 이마를 드러내는 사카야키[月代]와 머리를 묶는 마게[髷]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머리 모양은 에도 시대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사카야키와 마게가 만들어지고 유지된 과정은 수염 금지령과 함께 이해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당시에도 예외는 있었습니다. 얼굴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기르도록 허락받은 사무라이가 있었고, 수염은 지위가 낮아진 사람의 표식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수염의 의미는 시대와 신분에 따라 계속 달라졌습니다.

에도 원더랜드에서 에도 시대 의상을 입은 방문객과 배우들

메이지 이후, 수염이 다시 권위의 상징이 되다

에도 막부 말기에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수염의 이미지가 다시 바뀝니다. 수염은 촌스러운 것에서 문명을 아는 사람의 표식으로 바뀌었습니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단발을 허용하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이 법은 머리 모양을 선택할 자유를 넓힌 조치였고, 1873년 메이지 천황이 스스로 상투를 자르면서 관리들에게도 변화가 퍼졌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고위 관료와 지식인 사이에서는 서양식 복장과 함께 수염이 유행했습니다. 육군 중장 나가오카 가이시는 길이 70센티미터에 이르는 긴 수염을 기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수염은 '프로펠러 수염'이라 불렸습니다. 수염은 문명과 위엄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식이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흐름이 또 한 번 뒤집힙니다. 서구에서는 수염이 시대에 뒤진 이미지로 밀려났고, 일본에서도 전후 경제 성장기에는 깔끔하게 면도한 샐러리맨의 얼굴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학생 운동에서는 수염이 반체제의 표식으로 돌아왔고, 1990년대에는 손질하지 않은 듯한 수염이 유행했습니다. 지금은 정장에 어울리게 다듬은 수염을 패션으로 보는 시각이 늘었습니다.

아이누와 '케토'라는 말

일본 열도 북부의 아이누 남성은 전통적으로 풍성한 수염을 기렸습니다. 아이누 사회에서 수염은 자랑거리였고, 함부로 깎는 행동은 신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에도 시대 중반 이후 일본 본토에서는 수염이 없는 얼굴이 문명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누는 이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그려졌고, 이 이미지는 차별을 키우는 데 쓰였습니다.

서양인을 낮춰 부르던 케토[毛唐]라는 말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습니다. 글자 그대로 '털이 많은 당나라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서양인을 야만적으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외국인을 부르는 일본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표현이 왜 오늘날 조심해야 하는 말인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누가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을 '일본인 중 수염이 잘 나는 예외'로 설명하는 방식은 이 역사와 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회사 규칙과 법정 다툼

오늘날 일본에서 수염을 기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회사 규칙입니다. 접객이나 위생을 중시하는 업종에는 용모 규정이 있고, 수염과 문신을 함께 금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백화점의 대응도 갈립니다. 미쓰코시이세탄은 접객 담당 남성 직원의 수염을 금지하고, 다카시마야와 소고·세이부는 수염을 전면 금지하지 않되 청결을 유지하도록 요청합니다.

법정 다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08년 오사카의 우편 사업 회사 이쿠노 지점에서 일하던 나카무라 노보루 씨는 콧수염 때문에 인사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았습니다. 오사카 변호사협회는 수염이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다면 고객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에 부당한 처우를 중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2010년에는 고베 지방재판소가 수염을 이유로 인사 평가를 낮춘 우편 사업 회사에 37만 5,600엔의 배상을 명했습니다. 법원은 지점의 '용모 기준'을 좁게 해석하면 수염은 위반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2019년에는 오사카 지방재판소가 시영 지하철 운전사의 수염을 두고 "수염을 기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오사카시에 운전사에게 40만 엔을 배상하라고 명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인터넷에서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단정한 용모는 당연하다"는 의견과 "개인의 자유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의견이 맞섰습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일본에 수염을 금지하는 전국 단위의 법은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회사나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내부 규칙이고, 그 규칙이 개인의 자유와 충돌할 때 법원이 경계를 정합니다. 2010년 무렵 군마현 이세사키시는 쿨비즈 안내문에 수염 금지를 넣었다가 여론의 관심을 받은 뒤 조용히 그 문구를 없앴습니다. 용모 규칙은 시대에 따라 완화되거나 다시 조여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수염은 어떻게 여겨질까요?

수염을 기르는 유명인도 적지 않습니다. 현대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게임 제작자 고지마 히데오, '세일러복 아저씨'로 알려진 고바야시 히데아키, 배우 야마다 타카유키, 기자 야스다 준페이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의 수염은 개성이나 전문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수염을 기른 일본 문화계 인물들과 긴 수염 사진, 장식 수염을 한 사람들을 모은 콜라주

젊은 남성 사이에서는 여전히 깔끔한 얼굴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취업과 승진을 앞두고 수염을 미는 사람이 많고, 면도나 제모를 습관으로 삼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반대로 잘 다듬은 수염을 패션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2017년 파나소닉이 20~3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현재 직장은 남성의 용모에 엄격하다"고 답했고, 남성의 31%는 "수염을 기르고 출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규칙과 개인의 취향이 팽팽하게 맞서는 지점이 드러납니다.

이츠오 오카다는 긴 흰 수염을 기른 채 검으로 사과를 베는 묘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전통적인 사무라이 이미지와 현대의 퍼포먼스를 잇는 사례입니다.

긴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검을 휘두르며 사과를 베는 장면

일본인 남성의 수염이 유전적으로 유난히 적다는 설명도 근거가 약합니다. 얼굴 털의 밀도는 개인차가 크고, 조상 집단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아이누처럼 풍성한 수염을 전통적으로 자랑한 사람들도 일본 열도 안에 있었습니다. 수염이 적어 보이는 것은 유전자보다 면도 습관, 직장 규칙, 주변의 시선이 만든 결과일 수 있습니다.

수염을 기르는 방법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이발소에서 모양을 다듬고, 수염 오일이나 비어드 밤을 쓰는 남성이 늘었습니다. 반대로 수염을 아예 제거해 피부를 매끈하게 관리하는 선택도 퍼졌습니다. 기르기, 밀기, 없애기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공존하는 지금이 일본 수염 문화가 가장 다양해진 시점입니다.

수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남아 있습니다. 지저분하다는 인상, 고객 응대에서의 불편감, 회사 규칙 위반에 대한 부담이 여전합니다. 그런데도 유명인과 젊은 세대가 수염을 패션으로 받아들이면서, 수염은 반항과 게으름의 표식에서 패션과 개성의 언어로 이동했습니다. 일본 사회가 용모의 다양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시험하는 주제가 된 셈입니다.

수염 하나로 일본의 권위, 노동, 차별, 패션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뒤에도 회사 규칙과 시대의 취향이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수염을 기르는 것을 개인의 자유로 보시나요, 혹은 직장의 용모 규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출처 및 유용한 링크

저자 소개

Kevin Henrique

일본, 한국,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일본어 교육, 여행 팁, 깊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학 작가이자 여행자입니다.

커뮤니티

댓글

0개 댓글

이 언어로 공개된 댓글이 아직 없습니다.

댓글 보내기

이 글에 댓글 남기기

보안 확인을 불러오는 중...

링크, 임베드, 홍보 문구는 보내지 마세요. 댓글은 표시 전에 스팸 방지와 자동 번역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