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형제도는 어떻게 집행되는가

일본의 사형제도는 어떻게 집행되는가

헤이안 시대에는 사형을 멈췄던 나라가, 지금은 집행 날짜를 당일 아침에야 알립니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은 불교의 그늘에서 사형을 사실상 접어 두었습니다. 그 공백이 300년 가까이 이어지다가, 겐페이 전쟁을 기점으로 다시 목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그 나라는 법무대신의 서명 한 장으로 교수형을 집행하고, 사형수에게는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날짜를 알립니다. 1997년 이후 집행이 멈춘 한국과 나란히 놓으면, 그 침묵의 무게가 더 잘 보입니다.
목차 4

일본에서 사형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4세기경부터 일본은 중국의 사법 제도에 점점 더 영향을 받아, 사형을 포함한 형벌을 죄의 무게에 따라 나누는 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나라 시대부터 잔혹한 형벌과 사형은 점점 줄어들었고, 아마도 불교의 영향으로 헤이안 시대에 사형이 폐지되었습니다. 사형은 다음 300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겐페이 전쟁까지 말이죠. 목재 감방이 양쪽으로 늘어선 일본의 옛 감옥 복도 가마쿠라 시대에 사형이 널리 사용되었고, 화형, 끓여 죽이기, 십자가형을 포함한 집행 방법은 점점 더 잔혹해졌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역십자가형, 창에 찔려 죽이기, 톱질, 소나 수레로 능지처참하는 등 더욱 엄격한 집행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거친 방법과 사형의 광범위한 사용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 이어졌지만, 유교의 영향으로 하급자에 대한 범죄보다 상급자와 연장자에 대한 범죄가 더 가혹하게 처벌되었습니다. 메이지 초 형법 개혁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죄목이 줄었고, 지나치게 잔혹한 고문과 태형은 폐지되었습니다. 법정형에는 내란·외환 같은 죄목도 남아 있지만, 전후 판례에서 실제로 교수형이 내려지는 경우는 거의 살인을 동반한 사건입니다. 바닥에 빨간 네모가 그려진 일본 사형 집행실과 교수형을 암시하는 발

나가야마 기준, 일본이 사형을 고르는 방식

1983년 최고재판소가 나가야마 노리오(永山則夫) 사건에서 제시한 아홉 가지 잣대가, 법적으로는 선례가 아니면서도 이후 사형 선고의 사실상 지침이 되었습니다. 나가야마는 1968년 네 명을 살해한 뒤 1997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 범죄의 성질과 악의의 정도
  • 동기
  • 범행 방식, 특히 살해 방법의 잔혹성
  • 결과의 중대성, 특히 피해자 수
  • 유족의 감정
  •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
  • 피고인의 나이 (성년 연령은 2022년부터 18세이며, 범행 당시 18세 미만에게는 사형을 내릴 수 없습니다)
  • 전과
  • 범행 후의 정상, 반성의 정도
피해자 수가 가장 무겁게 작용합니다. 여럿을 죽인 사건에서는 사형이 원칙에 가깝고, 한 명이라도 강도살인이나 유괴살인처럼 잔혹하고 계획적인 경우에는 극형이 나옵니다. 단일 살인에 대한 사형은 예외로 여겨집니다. 건물 앞에 구급차와 구조대가 모여 있는 일본 사건 현장

집행 절차와 구치소의 비밀주의

사형 확정자는 형무소(케이무쇼)가 아니라, 교수대가 있는 구치소(拘置所)에서 집행을 기다립니다.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한 몇몇 구치소에만 집행실이 있습니다. 집행 영장은 법무성 내부 검토를 거친 뒤 법무대신이 서명합니다. 서명이 떨어지면 닷새 안에 집행합니다. 법령상 토요일·일요일·공휴일, 그리고 12월 29일부터 1월 3일 사이에는 집행하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은 확정 후 6개월 이내 명령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훈시 규정으로 여겨져 수년, 때로는 십수 년을 기다립니다. 과거에는 전날 알리고 희망 식사를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당일 아침에 본인에게만 알리고, 오전 중에 연행하는 쪽이 관례입니다. 가족과 변호인, 일반에는 그 뒤에야 통보됩니다. 2007년 12월 7일부터 당국은 집행된 사람의 이름, 나이, 죄의 성격을 공개합니다. 이 비밀주의는 당사자의 심정 안정을 이유로 설명됩니다. 다만 매일 아침이 집행일일 수 있다는 공포, 작별 인사조차 남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권 단체와 유엔 인권이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하카마다 이후에도 밧줄은 다시 내려왔다

2024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형수로 살았던 하카마다 이와오(袴田巖)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1966년 일가족 살인 혐의로 수십 년을 구치소에서 보낸 뒤의 판결이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형벌이 오판과 만났을 때의 무게가, 그때 다시 드러났습니다. 집행은 그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2018년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포함한 오움진리교 관련 사형수들이 잇달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2025년 6월 27일에는 2017년 가나가와현 자마에서 아홉 명을 죽인 시라이시 다카히로가 도쿄 구치소에서 집행되었습니다. SNS로 취약한 사람들을 유인한 사건이었습니다. 2026년 8월 21일에는 2009년 오사카 파친코점 방화로 다섯 명을 죽인 다카미 스나오가 오사카 구치소에서 집행되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아래 첫 사형이었습니다. 법무상에 따르면 그날 기준 사형 확정자는 100명, 이 중 43명이 재심을 청구 중이었습니다.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서는 오랫동안 응답자의 약 80%가 사형을 “어쩔 수 없다”고 답해 왔습니다. 정부는 그 숫자를 존치의 근거로 들고, 폐지론은 비밀 속의 집행과 하카마다 같은 오판을 근거로 맞섭니다. 밧줄은 법전에 남아 있고, 날짜는 아침이 되어서야 알려집니다.
출처 및 유용한 링크

저자 소개

Kevin Henrique

일본, 한국,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일본어 교육, 여행 팁, 깊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학 작가이자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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