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토라레(Netorare, NTR)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비롯한 일본 서브컬처에서 연인이나 배우자의 배신을 다루는 하위 장르입니다. 연인이나 부부, 또는 서로에 대한 약속이 있는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상황을 소재로 삼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배신당한 쪽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그 인물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이 글에서는 말의 뜻과 유래에서 출발해 대표 작품, 배신이 일어나는 이유, 배신한 쪽과 배신당한 쪽의 시점 차이, 배신 이후에 벌어지는 일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9
네토라레(寝取られ)라는 말의 의미
네토라레 [寝取られ]는 남의 배우자나 연인을 빼앗는 동사 寝取る(네토루)의 수동형 寝取られる를 명사로 굳힌 말입니다. 일본어 사전에는 "커컬드(배우자를 빼앗긴 남자)"에 해당하는 뜻과 함께 성인물에서 쓰이는 장르명으로 올라 있습니다. 빼앗는 쪽을 가리키는 寝取り(네토리)와, 배우자나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도록 본인이 유도하거나 지켜보는 寝取らせ(네토라세)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한자를 하나씩 보면 寝는 "자다, 눕다", 取는 "잡다, 빼앗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재미있는 점은 한자가 가진 뜻이 워낙 넓다 보니 구글이 이 단어를 번역할 때 자주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寝取られ를 한국어로 옮기면 "커컬드"라는 음차만 나오고, 寝取り는 단어의 뜻과 무관한 "수면"으로 나옵니다. 이럴 때는 jisho.org 같은 일본어 사전을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네토라레는 보통 가타카나 ネトラレ나 알파벳 약자 NTR로도 씁니다. 이 장르의 주된 목적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이야기를 내세워 질투와 상실감을 자극하는 데 있습니다. 같은 동사의 정중형인 寝取ります(네토리마스)와 寝取りました(네토리마시타)도 남의 배우자를 빼앗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NTR이라는 약자는 2001년 7월 18일, 일본의 한 개인 사이트 게시판에서 "寝取られ 게임"이라는 장르를 부를 약칭을 정하는 논의 끝에 등장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장르명은 아니었고, 히로인이 주인공이 아닌 인물과 관계를 맺는 장면이 있다는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후 인터넷과 성인 게임, 성인 영상 쪽에서 이 말이 퍼지면서 오늘날의 장르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네토라레 애니메이션과 만화
사람들이 네토라레를 검색할 때 찾는 것은 대개 일본의 관련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사람들은 남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듯합니다.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 자체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네토라레로 분류되는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성인물(헨타이)이지만, 에치 수준에 머물거나 배신을 소재로만 가져다 쓰는 일반 작품도 있습니다. 에치와 헨타이의 경계가 헷갈린다면 에치와 헨타이의 차이를 먼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신을 정면으로 다룬 일반 작품으로는 화이트 앨범(WHITE ALBUM)이 있습니다. 1998년 리프(Leaf)가 내놓은 성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원작이고, 아이돌이 된 연인과의 엇갈림을 그린 음악 드라마로 2009년 TV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되었습니다. 네토라레 계열 작품을 더 찾는다면 배신을 소재로 한 NTR 애니메이션 20선에서 장르별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

충성과 현실
네토라레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충성이 무엇인지 짚어야 합니다. 배신이 성립하려면 한쪽에게라도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충성은 누군가를 아끼고 존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맺은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제 네토라레를 더 깊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배신 자체는 여러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흔히 나오는 소재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악당이 결국 편을 바꿔 주인공과 손잡는 전형적인 전개를 떠올려 보세요.
그런 배신과 네토라레가 다른 점은 배신이 사랑과 친밀함의 맥락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악당의 배신이 권력이나 우정을 향한 것이라면, 네토라레에서 배신당한 사람은 감정적으로 훨씬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충격도 훨씬 개인적입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이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보다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토라레는 이 배신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시청자에게 질투와 절망까지 불러일으키려 합니다.

연인의 배신은 왜 이렇게 충격적인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만물에 적용되고, 우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타난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만은 영원할 거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이 믿음은 사회에 너무 깊이 자리 잡아서 사랑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에는 특별한 종류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어서인데, 이제 그중 연인 사이의 사랑만 남겨 보겠습니다.
이 사랑은 책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위해 모든 것을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잘 다루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줄어드는 순간, 또는 사랑이 끝나 버리는 순간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이런 믿음과, 다른 가능성이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연인의 배신이 유난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일반화이며, 이런 일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고 해도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네토라레의 전개
이 장르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다른 남성에게 빼앗기는 구도가 가장 흔합니다.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주거나, 남성끼리 관계를 맺는 유형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지만, 누군가가 자기 파트너를 배신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성이 배신하는 쪽이 더 흔하니, 여기서도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자가 남자친구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는 전형적인 구도입니다. 대부분은 배신당한 주인공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봅니다. 주인공의 눈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완벽해 보입니다. 그는 여자친구와 평범하게 대화하고, 데이트하고, 함께 웃고, 자극적인 순간도 나눴습니다.
얼핏 보면 잘못이 여자에게 있는 것 같지만, 돌을 던지기 전에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이 파트너를 바꾸게 되는 이유 몇 가지를 설명한 뒤, 그녀의 시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주제에 마음이 걸리는 남성 독자라면 특히 집중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배신의 이유
거리: 물리적이든 감정적이든,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면 관계는 닳기 마련입니다. 단절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약해지고, 결국 배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필요: 한쪽이 원하는 애정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관계 안에서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배신을 대안으로 만듭니다.
배신: 역설적이게 들리지만, 상냥함이 상냥함을 부르듯 배신도 배신을 부릅니다. 한 번의 실수는 불신과 바람의 연쇄를 만들기 쉽습니다.
시간: 앞에서 말했듯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끝나면 빈 껍데기만 남은 관계와 두 사람이 남습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인정하지 않은 채 다른 곳에서 감정을 채우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갈 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잊으려고 현재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시방편일 뿐이라서, 그 상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이면 배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관계 속 성관계의 부재: 제 생각에는 여성도 남성만큼 성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다만 문화적 압박 때문에 인정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관계가 없다는 것은 애정과 관심,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신호일 수 있고, 결국 충성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질투: 지나친 질투는 어떤 관계에도 치명적입니다. "찾는 사람은 찾게 된다"거나 "거짓말도 천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끊임없는 의심은 관계를 갉아먹고 바람의 문을 엽니다.
변화의 부재: 권태는 질투만큼 강력한 적입니다. 관계가 예측 가능하고 지루해지면 짜증과 감정 소모가 커지고, 두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상태에 이릅니다. 이런 경우 결말은 대개 비슷합니다.
이는 일본 사회의 남성들이 자기 관계에 배신이 스며드는 것을 그냥 지켜보게 되는 이유 몇 가지입니다. 일본에서 불륜과 이혼이 실제로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궁금하다면 일본의 불륜과 이혼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네토라레의 시점
약속한 대로, 이번에는 여자친구의 시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사실 그녀에게 주인공은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던 일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 가능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어 갔습니다.
그녀는 오늘, 내일, 모레, 그다음 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권태로웠고, 그녀는 더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왜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이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례에서는 위 목록에 있는 또 다른 문제, 거리 문제가 겹쳐 있었습니다.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 가까워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까워지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 있고, 상대를 거의 완전히 이해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남자 쪽에서는 관계가 완벽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큼 가까운 사이나 아니었고, 그녀도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말할 만큼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두 시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돌을 던질지 말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배신 이후
배신 이후의 전개는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경우, 한쪽이 배신을 모른 채 관계를 이어 가는 경우, 배신을 알면서도 헤어지지 않으려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충성이 양쪽 모두에게서 깨지고, 두 번째 경우에는 깨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경우에는 깨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이 장르에 나올 수 있지만, 가장 흔한 것은 관계가 파탄 나는 쪽입니다. 이를테면 여자가 파트너를 배신한 사실이 드러나고, 두 사람이 그대로 헤어지는 전개입니다.
관계가 끝난 뒤에는 주인공의 비탄과 후회가 따라옵니다. 한 단어로 줄이면 상실입니다. 이 상실감은 본편은 물론이고 곁가지 이야기까지 떠받치는 심리 드라마의 바탕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배신을 당한 주인공은 슬퍼지고 외로워집니다. 그 상실감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지, 이 일을 끝내 극복할지는 작품마다 갈립니다.

결론
저는 이 장르의 작품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어쩌면 흔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여자아이들을 차 버리고, 여자아이들은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전개에 익숙합니다. 워낙 뿌리 깊은 패턴이라 이 클리셰를 깨뜨리는 작품은 드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클리셰가 깨지는 순간을 반갑게 봅니다. 다소 사디스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주인공이 결국 그 결과를 겪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런 전개에서 현실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서사의 정직함입니다. 현실에서처럼 행동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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