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떤 광신도 집단에 의한 테러 공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처럼 안전한 나라조차 그 이미지와는 다른 날을 갖고 있습니다.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실린 것은 신문지에 싼 비닐봉지와 끝이 날카로운 우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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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의 배후, 옴진리교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는 1984년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본명 마쓰모토 지즈오)가 설립한 일본의 신흥 종교 교단입니다. 요가 모임으로 시작해 교세를 키웠고, 1987년 이름을 옴진리교로 바꾼 뒤 1989년 도쿄도로부터 종교법인 인증을 받았습니다.
1992년 아사하라는 자신을 ‘그리스도’, 일본의 유일한 계시된 스승,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칭하는 책을 냈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으로 끝나는 최후의 심판을 예언하며 교단을 무장 쪽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지하철 공격의 직접 동기는 종말론만이 아니었습니다. 교단에 대한 강제 수사가 임박하자, 수사망을 흩뜨리려고 가스미가세키(霞ヶ関)와 나가타초(永田町)를 지나는 열차를 노린 것입니다.
2007년 교단은 알레프와 히카리노와로 갈라졌습니다. 일본 공안은 후신 단체를 계속 감시하고 있고, 사건 이후 태어난 세대가 새 신자로 들어온다는 보도도 이어집니다.
도쿄 지하철 공격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옴진리교 신자 다섯 명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여객 수송망 중 하나인 도쿄 지하철의 아침 러시아워에 화학 공격을 가했습니다. 표적은 제도고속도교통영단(지금의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선, 히비야선, 지요다선을 달리는 열차 다섯 편이었습니다.
사용된 물질은 액체 사린이었습니다. 각각 신문지로 싼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고, 실행범은 끝이 날카로운 우산을 들고 지정된 열차에 탔습니다. 핀 머리만 한 사린 한 방울도 성인을 죽일 수 있습니다.
다른 역에서 봉지는 바닥에 버려졌고, 우산 끝으로 여러 번 찔렸습니다.
각 가해자는 열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간 뒤, 밖에서 기다리던 공범의 차량을 탔습니다. 봉지는 그대로 두어 사린이 객차와 승강장으로 새어 나가게 했습니다. 가스는 승객, 지하철 직원, 그리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린은 가장 휘발성이 강한 신경작용제 중 하나입니다. 액체에서 기체로 빨리 증발해 주변으로 퍼집니다. 사람들이 액체에 직접 닿지 않아도 기체에 노출될 수 있고, 그만큼 위협은 즉각적이지만 지속 시간은 짧습니다.
공격 당일 구급차는 688명을 실어 날랐고, 거의 5,000명이 다른 경로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집계로는 위독 17명, 중태 37명, 시각 장애로 중등도 증상을 보인 사람이 984명이었습니다. 오후에 가벼운 피해자들은 시력이 돌아오며 퇴원했고, 다음 날에는 대부분의 환자가 집으로 갈 수 있을 만큼 회복했습니다. 당일 사망자는 8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후 확정된 지하철 사건 사망자는 보통 13명입니다. 일부 추모·보도 집계는 14명으로 보기도 하고, 부상자 수는 5,500명에서 6,300명 안팎으로 갈립니다. 숫자만 외우기보다, 출근길 한 시간이 일본 사회에 남긴 충격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9개월 전, 마쓰모토
도쿄는 옴진리교가 사린을 처음 쓴 현장이 아닙니다. 1994년 6월 27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교단은 주거 지역에 사린을 살포했습니다. 목적 중 하나는 교단과 얽힌 재판을 맡은 판사를 겨냥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이후 도쿄에서 쓸 사린의 성능을 시험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마쓰모토 사린 사건으로 7~8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경찰은 교단과의 연결을 바로 입증하지 못했고, 진상은 이듬해 지하철 공격 뒤에야 드러났습니다. 도쿄의 아침은, 이미 한 번 시험된 무기가 대도시 출퇴근에 옮겨진 결과였습니다.
사린 가스 공격 이후
사린 공격은 전후 일본이 겪은 최악의 무차별 테러 가운데 하나로 남았습니다. 범죄가 거의 없다고 여겨지던 사회에 혼란과 공포가 퍼졌고, 그 여파는 도시 풍경에도 남았습니다. 일본 거리에 쓰레기통이 유난히 적은 이유 중 하나로도 이 사건이 자주 거론됩니다.
공격 직후 옴진리교는 종교법인 지위를 잃었고, 1995년 10월 도쿄지방재판소는 교단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많은 신자가 체포됐습니다. 일본 국회는 단체를 통째로 금지해 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공안이 감시와 활동 축소를 위해 예산을 받는 쪽으로 갔습니다.
이후 교단 관련자 다수가 기소됐습니다. 무기징역, 징역, 집행유예, 벌금, 무죄가 갈렸고, 사형 선고는 교주 포함 13명에게 내려졌습니다. 2018년 7월 6일 아사하라 쇼코 등 7명, 같은 달 26일 나머지 6명의 사형이 집행되며 사형 판결 13명은 모두 형이 집행됐습니다.
옴진리교 사건 전체로 재판에서 인정된 사망자는 29명, 부상자는 6,500명 안팎입니다. 지하철만이 아니라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 마쓰모토 사린 사건까지 포함한 숫자입니다.
일본을 ‘안전한 나라’로만 기억하는 사람에게 이 사건은 반대쪽을 보여 줍니다. 요가와 구원 이야기로 시작해 출근길 화학 무기로 끝난 교단의 궤적은, 일본의 종교를 이야기할 때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가스미가세키의 아침은 아직 그 날짜를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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