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붙는 라멘」이라고 하면 그릇 위로 치솟는 불길을 떠올리기 쉽다. 고가시 라멘(焦がしラーメン)의 불은 그 장면이 아니다. 웍 안에서 몇 초 만에 끝나는, 거의 보이지 않는 그을림이다.
그 짧은 순간에 미소나 쇼유 타레가 검게 변하고, 국물은 탄내가 아니라 고소하고 깊은 향을 얻는다. 겉모습은 타 버린 한 그릇처럼 보여도, 한 숟갈이면 왜 일부러 그을리는지 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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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시란 무엇인가
일본어 焦がし(こがし)는 「그을린 것」이다. 면을 불 위에 올리는 말이 아니라, 양념을 센 불에 순간적으로 그을려 향을 뽑는 기법에 가깝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봉지라면의 「불맛」과도 결이 다르다. 여기는 조미료 자체를 웍에서 그을리는 쪽이다.
그래서 그릇이 검다. 국물이 탁한 돈코츠처럼 뿌연 게 아니라, 타레가 숯처럼 물들어 거의 검정에 가까운 색이 된다. 보기엔 쓴맛이 날 것 같아도, 타이밍이 맞으면 카라멜처럼 달고 스모키한 향이 먼저 올라온다.
검색창에 「고가시」를 치면 가고시마 라멘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가고시마는 규슈의 현 이름이고, 고가시는 그을린다는 조리 말이다. 발음이 닮아 보여도 한 그릇의 정체는 완전히 다르다.
웍에서 타레를 그을리는 법
고교(五行, Gogyo)가 쓰는 방식은 이렇다. 중식 냄비에 라드를 300도 이상으로 달군 뒤, 미소 또는 쇼유 타레를 넣고 잠깐 그을린다. 너무 빠르면 향이 안 나고, 한 박자 늦으면 진짜로 타 버린다. 그 직후 돈코츠를 고아 만든 맑은 국물, 이른바 친탄(清湯)을 붓는다. 면은 그다음에 담는다.
메뉴는 보통 미소와 쇼유 두 갈래다. 미소 쪽은 규슈 미소를 중심으로 사이쿄, 이와테 쪽 미소를 섞고, 쇼유는 후쿠오카 오래된 장유 가게의 본발효 간장을 쓴다고 한다. 면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국물의 색과 향을 만드는 조리 단계다.
토핑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차슈, 양배추, 아지타마, 나루토마키, 김처럼 라멘에서 익숙한 구성이 자주 올라온다. 검은 국물 위에 흰 면과 초록 파가 얹히면, 그제야 「불 라멘」이 아니라 「그을린 국물」이라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하카타에서 시작된 고교
이 한 그릇을 만든 사람은 잇푸도(一風堂)의 가와하라 시게미(河原成美)다. 2000년 11월, 라멘으로 유명한 하카타에서 고교가 문을 열었다. 후다닥 면만 먹고 일어나는 가게가 아니라, 술과 안주를 곁들이다가 마지막에 면을 먹는 라멘 다이닝에 가깝다.
도쿄 니시아자부 점은 2003년 6월에 열렸고, 롯폰기·노기자카 쪽에서 심야까지 불을 밝히던 가게로 알려졌다. 그 점포는 2020년 10월에 문을 닫았다. 교토, 나고야, 홍콩, 시드니에도 간판이 걸린 적이 있다. 모회사는 잇푸도를 운영하는 힘의 근원(力の源) 그룹이다. 지금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가게마다 다르니, 방문 전에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교토 멘바카는 고가시가 아니다
일본에서 「불 라멘」을 검색하면 교토의 멘바카 이치다이(めん馬鹿一代)가 먼저 나온다. 여기는 네기 라멘 위에 뜨겁게 달군 기름을 부어, 그릇에서 불길이 치솟는 쇼를 보여 준다. 손님은 손을 뒤로 하고, 그릇을 잡지 말라는 안내를 듣는다. 볼거리는 확실하다. 다만 그 불은 고가시의 웍 그을림과 다른 기술이다.
고가시는 주방에서 타레를 그을려 국물을 검게 만드는 맛의 설계다. 멘바카는 완성된 그릇 위에서 불을 일으키는 연출이다. 둘 다 「불이 붙는 라멘」으로 묶이면, 정작 먹으러 간 사람이 다른 한 그릇을 기다리게 된다.
불이 무대가 되는 다른 요리
재료를 불꽃으로 다루는 발상 자체는 고가시만의 것은 아니다. 테판야키는 철판 위에서 불이 손님 쪽으로 넘어오고, 중국 요리에도 웍을 들어 불길을 감는 장면이 있다. 고가시가 특이한 지점은 그 불을 쇼로 남기지 않고, 국물 한 방울의 향으로 접는다는 데 있다.
일본 면 요리는 국물만 바뀌어도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소바가 메밀의 향을 살리는 쪽이라면, 고가시 라멘은 타레를 그을려 국물에 스모크를 심는 쪽이다. 검게 보여도 탄 음식은 아니다. 그을림을 한 박자 조절한 국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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