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일본인을 변태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은 일본인의 도덕이 유난히 높다고 믿는다. 둘 다 같은 나라 이야기다. 전철에서는 속어도, 성적 농담도 잘 들리지 않는데, 서점 한켠에는 18금 코너가 버젓이 있다.
서양에서 그 낙인이 붙은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이 만든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의 에치와, 18금으로 넘어가는 기이한 발명품들이 국경 밖으로 먼저 나갔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절과, 화면 속의 과장이 한 묶음으로 수출된 셈이다.

정작 거리에서 만나는 일본인은 겸손하고 남을 배려한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IPSS)의 제16회 출생동향기본조사(2021년)를 보면, 미혼 18~34세 가운데 이성과 사귀지 않는 비율이 남녀 모두 70% 안팎이다. 그중 약 3명 중 1명은 연애 자체에 특별히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같은 연령의 미혼 남성 53.0%, 여성 47.5%만이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목차 4
일본인은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공공 도덕은 서양식 종교 계율처럼 ‘이것은 절대 옳고 저것은 절대 그르다’로 움직이지 않는다. 상황과, 남이 어떻게 볼지가 먼저 온다. 음행과 간음을 단죄하는 교리에 묶여 있지는 않지만, 체면과 민폐를 피하는 압력은 교회 십계보다 일상에서 더 촘촘할 때가 많다.
그 간극을 설명하는 말이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다. 혼네는 속마음, 다테마에는 겉으로 내보이는 태도다. 성적 취향이나 페티시는 혼네 쪽에 두고, 전철·사무실·학교 앞에서는 다테마에로 입을 다문다. 겉과 속이 다르다기보다, 자리를 가린다고 보는 편이 가깝다.
서양에서는 성적 암시가 노래 가사와 일상 농담에 스며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 공공장소에서는 그런 말을 피하는 편이 기본이다. 대중가요도 연애 이야기와는 별개로, 노골적인 성 가사는 주류 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서 휘파람이나 ‘야동’, ‘보지’, ‘꼴리네’ 같은 말을 듣기는 어렵다. 누가 중지를 들어 보이면, 욕이 아니라 일본 수화일 수도 있다.

사회의 문화와 습관이 그런 공공의 선을 만든다. 많은 청년은 일, 체면, 주변의 눈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서양이 상상하는 식의 ‘대놓고 문란한 거리’에는 관심이 적다.
일본에도 변태는 있다. 많고, 찾고 싶으면 금방 찾는다. 다만 그러고 싶은 사람이 그쪽으로 가는 구조에 가깝다. 브라질에서는 음악과 대화가 원하지 않아도 부적절한 말을 귀에 밀어 넣는다. 그 환경에서 선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
서양이 일본인을 변태라고 보는 이유
일본 문화의 기준은 서양과 다르다. 그중 일부는 처음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혼욕, 간초, 선정적 이미지, 페티시 상점. 이런 조각이 해외로 나가면 ‘일본인 = 변태’라는 짧은 문장이 된다.

서양의 일본 고정관념은 19세기 말, 나라가 문을 열고 예술과 풍속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를 지나며 일본은 발명과 기이한 상품으로도 유명해졌다.
생리대 향수, 자위 이야기를 나누는 여성 바, 가슴 만지기 캠페인 같은 제안이 그 이미지에 기름을 붓는다. 한두 건의 해프닝이 나라 전체의 성격처럼 퍼지는 패턴이다.
도덕이 없어서가 아니다. 공공의 체면과 사적 취향이 층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풍속 거리나 특정 업소에서 대담해지고, 에치와 헨타이 작품은 그 취향을 화면 안에 가둔다. 길거리의 침묵과 만화의 과장을 같은 저울에 올리면, 저울이 먼저 망가진다.

개인적으로 일본인을 변태라고 생각했나?
일본인들 사이에 있으면 속어나 그런 내용의 음악을 듣기 어렵다. 그래서 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공공의 선량함이 곧 안전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키하바라와 닛폰바시 거리를 걷다 보면, 학생복 차림의 여성이 마사지 업소 전단을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순수한 쪽으로 가면, 메이드 복장을 한 직원이 우포 캐처에서 돈을 쓰라고 손짓한다.
일본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기차 안에서 여학생 두 명이 내 앞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속옷을 보여 주며 킥킥대던 적도 있다. 그 장면은 ‘나라가 문란하다’기보다, 그 칸의 그 순간이 이상했다는 쪽에 가깝다.

아무 가게나 서점에 들어가도 +18이라고 적힌 코너가 있다. 어떤 가게는 문에 부적절한 이미지를 내거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일본에는 검열이 있다. 형법 제175조는 음란한 문서·도화·전자 기록 등을 반포·판매·전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5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정한다. 2011년 개정으로 디지털 유포도 명시됐다. 성기 모자이크는 그 조항 아래 업계가 스스로 선을 그은 결과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브라질처럼 원하지 않아도 변태적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본의 거리는 의외로 숨이 트인다. 일본에서는 그런 것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브라질에서는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온다.
결론적으로, 일본인은 변태인가 아닌가?
일본인이 변태라는 생각은, 서양이 일본을 처음 접할 때 생기는 인지 부조화에 가깝다. 서양의 어느 나라와도 다른 동아시아의 습관을, 이상한 조각만 모아 성급한 결론으로 붙이는 것이다.

일본은 변태에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문화가 규칙을 따르고 선을 지키라고 강하게 누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억압을 애니메이션, 만화, 광고 같은 화면 쪽으로 밀어 낸다. 길에서는 입을 다물고, 종이와 픽셀에서는 과감해지는 분업이다.
성적 페티시만 놓고 보면 일본은 표현의 폭이 넓은 편이다. 도덕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공의 체면이 사적 창작을 다른 방에 두기 때문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드는 개방성도 그 방에 들어 있다.
요즘은 일본과 관련된 변태적 장면을 찾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클릭을 부른다. 페티시와 이상한 행동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난다. 카메라가 일본을 더 자주 겨눌 뿐이다.

인도인이 카마수트라를 남겼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변태로 낙인찍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일본인에게는 그 낙인이 쉽게 붙을까.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는 변태다. 문제는 욕망이 공공의 선을 넘어서 남을 불편하게 만드느냐다.
성적 암시가 일상 말과 대중음악에 깔린 환경에서 사는 것은, 나는 솔직히 불쾌하다. 브라질인에게는 그 낙인을 붙이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일괄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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