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 - 일본 역사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 - 일본 역사

새끼줄 무늬 토기에서 논과 청동기로, 열도의 일상은 거의 다른 나라가 된다.

빙하기가 끝나기 전, 일본은 지금처럼 바다로 떨어진 열도가 아니었다. 남쪽 규슈는 한반도와, 북쪽 홋카이도는 시베리아와 육교로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기원전 3만 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다. 구석기인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갔던 것과 같은 식으로, 이쪽 육교도 뗀석기를 남기며 건너졌다. 그 뒤에 오는 조몬과 야요이는, 흔히 “일본인이 정착한 시점”으로 묶는 기원전 3세기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한쪽은 새끼줄 무늬 토기와 패총의 세계이고, 다른 쪽은 논과 청동·철이 마을을 다시 짜는 세계다. 두 시대가 맞닿는 지점에서 열도의 일상은 거의 다른 나라가 된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혼돈의 바다에서 일본 열도를 만드는 신화 장면
목차 3

조몬 시대 (기원전 약 1만 5천 년 ~ 기원전 300년경)

주로 석기 같은 구석기 시대의 흔적은 기원전 3만 년경부터 일본에서 나타난다. 조몬 시대의 초기 단계는 일본이 아직 좁은 반도로 아시아 대륙과 이어져 있을 때 시작되었다. 그 앞 단계는 일본 구석기 시대의 이야기다. 빙하기가 끝난 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오르면서 일본 열도는 아시아 대륙과 떨어졌다. 한반도에서 약 190km 떨어진 규슈는 대륙의 변화를 간헐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가깝고, 열도 안의 사람들이 따로 자라날 만큼은 멀었다. 열도 안의 숲도 바뀌었다. 너도밤나무, 밤나무, 참나무 같은 토종 수종이 견과와 도토리를 내놓아,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든든한 식량이 되었다. 조몬 사람들은 주로 내륙의 강가나 해안 가까운 작은 공동체에서 살았고, 사냥·어로·채집으로 생계를 이었다. 해안 정착지가 남긴 패총(조개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 더미)은 지금도 식단과 계절을 읽어 내는 기록이다. 이름 자체가 토기에서 왔다. 조몬(縄文)은 새끼줄을 굴려 찍은 무늬를 뜻한다. 물레가 없었기 때문에 점토를 로프처럼 만들어 나선으로 쌓아 올리는 말기법을 썼고, 초기의 독특한 조몬 토기는 정제되지 않은 점토로 성형되었다. 중기가 되면 입구가 불꽃처럼 솟은 화염형 토기와 사람·동물을 본뜬 토우(土偶)가 늘고, 옻칠한 나무 그릇도 나타난다. 고고학 발굴은 이 시대 말에 초기 형태의 재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수렵 채집만으로 끝나는 사회는 아니었다. 기원전 1500년경 이후 기후가 차가워지고 식량이 줄어들자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사람들이 더 작은 집단으로 모이자 지역 차이는 커졌다. 홋카이도와 동북 일부에서는 야요이 문화가 들어온 뒤에도 조몬식 생활이 오래 남았고, 이를 속조몬이라고 부른다. 야요이로의 전환의 일부로, 습지나 마른 밭에서 기르는 가축화된 벼가 이 시기에 일본에 들어왔다고 본다. 일본 열도의 선사 시대를 그린 역사 일러스트

야요이 시대 (기원전 300년경 ~ 서기 250년경)

야요이(弥生)라는 이름은 1884년 도쿄 분쿄구 야요이정 패총에서 나온 토기에서 붙었다. 교과서에 흔히 적히는 연대는 기원전 300년에서 서기 250년 무렵이지만, 시작점은 학자에 따라 기원전 10세기설부터 기원전 3세기설까지 갈린다. 규슈 북부의 논 유적은 전통 연대보다 이르게 잡는 연구가 있다. 금속 가공은 조몬 말에도 보이지만, 야요이 사람들은 초기에는 여전히 석제 도구를 썼다. 이후 석기는 청동과 철로 만든 무기, 갑옷, 장신구로 바뀌었다. 벼농사가 들어오자 괭이와 삽의 날도 금속으로 바뀌고, 논과 경작지를 위한 관개 기술이 발달했다. 대규모 물을 쓰는 수도작은 조몬 말의 소규모 밭벼와는 결이 달랐다. 농업과 함께 식단과 생활은 급히 변했다. 이제 영구히 정착하고, 식량의 대부분은 마을 근처에서 났다. 사냥은 더 이상 주된 식량원이 아니었다. 토기는 여전히 점토를 말아 매끄럽게 한 뒤 구웠지만, 야요이 토기는 더 얇고 단단하며 기공이 적고 저장·취사에 맞춰 기능적으로 바뀌었다. 벼와 금속은 한반도 남부를 거쳐 규슈 북부로 들어온 경로가 고고학에서 가장 흔히 채택된다. 곡식을 쌓고 물을 나누는 일이 마을을 키우자 계급이 갈리고, 환호(環濠)를 두른 큰 취락이 생긴다. 나라 분지의 가라코·카기 유적처럼 동탁(銅鐸)을 만든 공방이 확인되는 곳도 있다. 동탁은 종처럼 생긴 청동 의기로, 들판의 제사와 수장의 권위를 동시에 보여 준다. 중국 사서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는 3세기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가 위나라에 조공하고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 쪽 고사기·일본서기에는 같은 이름이 보이지 않아 실존과 위치를 놓고 설이 갈리지만, 야요이 말의 소국들이 대륙과 외교할 만큼 커져 있었다는 점은 남는다. 접촉이 거의 없는 사냥 집단에서 농업·야금·정치가 있는 사회로의 전환은 여기서 일단 윤곽이 잡힌다. 야요이가 곧바로 다이묘와 사무라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다음 장은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올라가는 고훈 시대이며, 황실의 줄기와 중세의 무가는 그보다 한참 뒤에서야 모습을 고정한다.

조몬과 야요이, 무엇이 달랐나

두 시대를 한 줄로 나누면 이렇다. 숫자는 교과서의 전통 구분이고, 실제 전환은 규슈에서 먼저, 홋카이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구분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전통적 연대 기원전 약 1만 5천 년 ~ 기원전 300년경 기원전 300년경 ~ 서기 250년경
생업 사냥, 어로, 채집. 말기에는 소규모 재배 논농사와 정주. 사냥은 보조
토기 새끼줄 무늬, 말기법, 두껍고 장식이 풍부 더 얇고 단단하며 저장·취사에 맞춤
도구 석기 중심. 활과 작살, 그물추 청동·철이 석기를 대체. 관개 농구
취락 강가·해안의 작은 공동체, 수혈주거, 패총 환호 취락, 곡식 창고, 계급이 드러나는 묘제
상징 유물 토우, 화염형 토기, 칠기 동탁, 청동 무기, 곡옥
이 두 시대만으로 일본사가 끝나지 않는다. 고훈을 지난 뒤의 궁정은 헤이안 시대에서 숨을 고르고, 무가가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는 이야기는 막부 쪽에서 따로 이어진다.
출처 및 유용한 링크

저자 소개

Kevin Henrique

일본, 한국,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일본어 교육, 여행 팁, 깊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학 작가이자 여행자입니다.

커뮤니티

댓글

0개 댓글

이 언어로 공개된 댓글이 아직 없습니다.

댓글 보내기

이 글에 댓글 남기기

보안 확인을 불러오는 중...

링크, 임베드, 홍보 문구는 보내지 마세요. 댓글은 표시 전에 스팸 방지와 자동 번역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