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는 전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 시기에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경제 기적'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경제가 엄청난 호황을 누려 경제 지표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경제 호황 동안 일본은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경제국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인구 구조가 빠르게 고령화되기 시작했고, 노동력은 이전 수십 년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노동 생산성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 경제 기적은 일본 정부의 경제 개입과 미국의 점령기 원조, 그리고 한국전쟁 특수(조선 특수)가 맞물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 기적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더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목차9
일본 경제 기적이란?
일본의 경제 기적은 기본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 일본 경제의 성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기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냉전의 종결을 포함하며, 연도로는 1945년부터 1991년까지입니다.
이 경제 기적은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회복, 고도 성장, 안정적 성장, 그리고 저성장입니다. 각 단계는 뒤에서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이 시기 일본 경제를 떠받친 특징을 짚어 보겠습니다.
제조업체, 공급업체, 유통업체, 은행이 긴밀하게 연결된 기업 집단인 케이레츠(keiretsu);
기업별 노동조합과 매년 임금 협상을 벌이는 춘투(春闘, shuntō);
정부 관료와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대기업의 종신고용(終身雇用, shūshin koyō);
현장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강력한 노동조합;
이러한 특징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 상당한 존재감을 확립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일본 경제가 무너질까 봐 우려했습니다.
왜 우려했을까요? 불만족스럽고 가난한 일본인이 공산주의로 전향하여 소련이 태평양을 통제하게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이 피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통해 더 깊이 설명하겠습니다.
일본의 전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습니다. 어떤 의미냐고요? 당시 미국의 무서운 군사력을 세계에 보여준 두 개의 원자폭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격과 일본에 대한 다른 연합군의 공습으로 심하게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1968년에는 국민총생산(GNP) 기준으로 자본주의 국가 중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정부는 이 기적에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했습니다. 먼저 위기 관리에 효과적인 규제와 보호주의를 도입해 민간 부문의 성장을 촉진했습니다. 이러한 조치 후에는 무역 확장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30년 후 일본은 소위 '성장 둔화'를 겪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수출을 견제하고 엔화 절상을 요구하면서 무역 마찰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급격히 절상되면서 일본은 1986년 엔고 불황을 겪었습니다.
일본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각종 경제·금융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자산 버블이 1990년대 초에 꺼지면서 경제는 긴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일본 경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저성장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일본의 회복 단계
이제 약속대로 이 기적의 네 단계를 각각 설명하겠습니다. 주목할 점은 전후 시기에 거의 모든 국가가 어떤 수준의 산업 성장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전쟁 피해로 산업 생산이 크게 줄었던 일본은 회복 속도가 유난히 빨랐습니다. 일본이 빠르게 회복한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효과적인 경제 개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개혁은 경사생산방식(傾斜生産方式)의 도입입니다. 석탄과 철강 같은 기초 자재 생산에 자원을 집중하고, 그 성과를 다른 산업으로 확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정부는 생산을 늘리기 위해 여성 노동력을 포함한 노동력 확보에도 힘썼습니다.
회복의 두 번째 이유는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지자 미국은 멀리 떨어진 본토 대신 가까운 일본을 병참 기지로 활용했습니다.
일본은 미군의 물류 작전을 지원하고 군수 물자를 생산하면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미국의 대규모 주문은 일본 경제를 자극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전쟁의 폐허에서 회복했고, 다음 단계인 고도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일본의 고도 성장 단계
경제 개혁을 마치고 미국의 지원을 확보한 일본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한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도 성장의 요인은 복잡합니다. 이 시기에는 하야토 이케다(池田勇人) 내각의 정책이 특히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곧 설명하겠습니다.
1968년 일본 경제백서는 1965년 가을의 일시적 침체 이후 경제가 다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확대', '성장', '상승' 같은 단어가 1967년부터 1971년까지의 경제 보고서에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일본 소비 증가
1973년 석유 위기 이전까지 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소비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도시 가구의 월평균 소비는 1955년과 1970년 사이에 실질 기준으로 두 배가 되었습니다.
소비 구성도 달라졌습니다. 식량과 의복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 쓰는 돈의 비중은 줄었습니다. 반면 여가와 오락, 내구재 구입에 쓰는 돈은 늘었습니다. 이러한 소비 증가는 생산을 자극해 GDP 성장에 힘을 보탰습니다.
일본 정부 정책의 영향
통상산업성(MITI) 장관을 지낸 이케다 하야토가 총리가 되면서 정부는 '국민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민간 부문을 키우기 위해 금리와 세금을 낮췄습니다.
이케다 총리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을 따랐습니다. 이 정책은 '과잉대출(overloan)'이라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 대출을 제공하고, 시중은행이 다시 산업 대기업 집단에 대출을 해 주는 구조입니다.
당시 일본은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시중은행은 일본은행에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행은 시중은행에 대한 강한 통제력을 확보했습니다.
이 과잉대출 구조는 반독점법 완화와 맞물려 전쟁 전 재벌(zaibatsu)을 이은 케이레츠(keiretsu)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케이레츠의 중심에는 시중은행이 있었고, 은행은 대출과 교차 출자를 통해 여러 산업을 묶었습니다. 이렇게 수직·수평 통합이 강화되면서 외국 기업의 진입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과잉대출 관행은 오늘날 일본의 국가 부채 문제를 이해할 때도 참고가 됩니다.
이케다 정부는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 배정 정책도 시행했습니다. 통상산업성은 이 제도를 활용해 수출을 촉진하고, 투자를 관리하고, 생산 능력을 점검했습니다.
그 밖의 정부 조치
앞서 언급한 조치 외에도 정부는 성공의 기반을 다지는 여러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금융 완화를 바탕으로 인프라 투자를 빠르게 늘린 것입니다.
이케다 정부는 이전에 소홀히 여겨졌던 통신 부문에도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정부는 규제와 개입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면서도 무역 자유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했습니다.
1960년 4월 수입 자유화율은 1956년의 22%에서 41%로 올랐습니다. 이케다는 3년 안에 80%까지 높이겠다고 했습니다. 각 부문의 반발로 계획은 속도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정부는 일본이 국제 질서에 참여하고 수출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대외 경제협력 기구와 수출 지원 기관도 설립했습니다. 이 기관들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무역 자유화에 대한 국내 우려를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케다 내각의 주요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55년 GATT 가입으로 세계 경제에 본격 편입;
1964년 IMF와 OECD 가입;
재임 기간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
일본의 안정 성장 단계
1973년 첫 석유 위기가 일본을 덮쳤습니다. 석유 가격은 배럴당 3달러 안팎에서 13달러 이상으로 뛰었습니다. 석유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의 산업 생산은 약 20% 줄었습니다.
1979년 제2차 석유 위기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석유 가격은 다시 배럴당 13달러에서 40달러 안팎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충격을 견뎌 냈습니다. 에너지 다소비형 생산에서 기술 집약형 생산으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석유 위기와 미국의 압력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생산 비용이 오르자 일본 기업들은 연료 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또 다른 요인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이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증가가 미국 산업에 부담을 주면서 갈등이 커졌습니다. 1985년에는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이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맺었고, 엔화는 달러에 대해 크게 절상되었습니다.
일본은 이 전환을 발판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 갔고, 과학기술 응용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석유 위기로 타격을 입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교해도 회복이 빨랐습니다.
일본 경제 기적은 어떻게 끝났나?
마지막 단계인 저성장기는 199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이 시기의 핵심 사건은 자산 버블의 붕괴와 그에 따른 장기 디플레이션입니다.
경제 기적의 종결은 냉전의 종결과 시기적으로 겹쳤습니다. 일본 주식 시장은 1989년 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1990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고, 1991년에는 자산 가격 버블이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걸프 전쟁과 소련 해체가 겹치면서 국제 질서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이 주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일본 경제 기적은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쌓은 제조업 기반과 인프라는 오늘날 일본 경제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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